늦가을 천마산

출발 | 2014. 11. 16. 19:16
Posted by 비파형동검

지명의 유래에 관한 특별한 지식이 없더라고 직접 몸으로 체험을 하고나면 왜 그 지명이 생겼는지 어렴풋이 알게되는 곳이 있습니다. 천마산이 왜 천마산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천마산의 꺽정바위는 왜 생겼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천마산에 표지천마산 설명입니다.

천마산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산입니다. 한자로 <山> 이라고 씁니다. 하늘 천에 문지를 마자이니 하늘을 문지를 산이라는 뜻인데요,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보니 백과사전에 이렇게 나옵니다.

"고려 말에 이성계가 이곳에 사냥을 왔다가 산세를 살펴보니 산이 높고 아주 험준해서 지나가는 농부에게 산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그 농부는 "소인은 무식하여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이성계는 혼잣말로 "인간이 가는 곳마다 청산은 수없이 있지만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이 홀()이 꽂힌 것 같아, 손이 석 자만 더 길었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라고 한 데서 '천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즉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고려시대의 이성계까지 등장하니 역사가 꽤나 오래된 옛 이야기입니다. 달마대사가 어깨를 펴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상상력이 참 좋네요. 그래도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그림을 그린 조상님들도 있으니 이정도의 상상력은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도 좋을 듯 싶습니다. 말 그대로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산의 모습은 다르게 보일테니까요. 그리고 고려시대의 이성계까지 나옵니다. 조선의 태조이죠. 그렇다면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에도 들어가 있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만 제가 찾아보려하지 않아서.

오랜 역사를 가진 산입니다. 그 산에 얽힌, 아니 계곡계곡마다 얽힌 삶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것을 모두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두 찾아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산을 삶의 터전삼아 살아온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겠죠? 마지막에 임꺽정의 이야기까지 나오니 왜 그런지는 산을 오르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호평동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표지판천마산 정상으로 가라는 표지판이네요.


이런 안내판을 보면 길 설명이 잘 되어있을 듯 싶지만 절대 아닙니다. 제가 많은 산을 타본 것은 아니지만, 그닥 높지도 않은 산이 이리 험하다니. 천마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서 일단 찍어는 두었습니다.



길이제 나무들도 겨울을 준비하네요.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붉은 빛을 뽐내는 나무들이 있지만 길은 낙엽으로 덮여있습니다. 미끌어지기도 쉽지요. 하지만 땅만보며 오르다가 이런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하~~~하곤 합니다. 아직 감탄하기는 이릅니다.


오르면서이제 슬슬 높이가 있습니다. 마을들이 아래로 보이기 시작하네요.


산세의 일부산세입니다.




천마산이라는 산의 매력은 이 산세를 구경하는 것인데요. 산맥이니 정맥이니 하는 단어를 모르더라고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마치 주름처럼 산세가 이어져 있고 그 계곡 계곡마다 마을들이 사람이 산 흔적이 보입니다. 마치 아늑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처럼.

임꺽정바위임꺽정바위입니다.


임꺽정이야 조선시대 유명한 도적이니 모르실 분이 없으리라 보입니다. 조선의 3대 도적이 있으니 하나가 홍길동이요, 하나가 장길산, 하나가 임꺽정입니다. 도적이라고 너 나쁜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운 인물들입니다. 계급에 도전했지만 계급의 한계로 무너진 사람들이기도 하고, 또 의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천마산은 그 중 임꺽정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 산인데요, 임꺽정이야 여기저기 숨어서 지냈어야 했으니 어디든 못 갔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날 관군에 쫒겨 하루밤 숨었던 바위가 있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지니 이 바위또한 그런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르겠지요. 또 이 바위가 원래 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을 듯 싶지만 그 임꺽정때문에 제 의사도 묻지않고 이름이 정해져버렸으니 바위의 기분은 알리가 없습니다. 

하여튼 바위의 이름이 정해졌으니 왜 이 바위가 임꺽정바위가 되었을까를 생각해봐야겠는데요...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잠깐 이야기했듯 이 천마산은 험하기로도 나름의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기도 하고요, 산이 많이 미끄럽습니다. 돌도 많고요. 이런 산이라하면 도적떼가 도망가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요?? 또 지금이야 등산화다 스틱이다 다 있지만, 당시에 짚신에 맨발에 이런산을 오르기란 쉽지도 않았겠죠?

등산이라는 취미활동을 생각해보면, 아니 취미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생산 활동에서 벗어난 계급의 시간 활용이 취미활동인 것 같은데요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 잠자기 바빴을테니 산에 오를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한 예로 '동명일기'를 보면 양반댁 마나님께서 아랫사람들을 부랴부랴 새벽부터 깨워서 가마타고 산에 올라 일출을 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품하고 있는 종들을 부리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참 ....그 종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밤 늦게까지 시중들다가 새벽부터 일어나 그 시중을 들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누군가에는 한 없이 아름다운 장면일지라도 누군가에는 한없이 피곤한 상황일테니 말입니다.

다시 그러니 관군들도 이 험한 천마산을 명령이 아니면 굳이 오를일이 없을테니 도덕떼인 임꺽정이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보면 이 산을 오르내린 도적떼 덕분에, 혹은 약초 캐던 심마니 덕분에, 혹은 화전민 덕분에,..혹은 등등의 기록조차 남겨져있지 않은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그길을 우리는 등산화 신고 오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경사급경사의 바윗길.

옛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움직였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지금은 이렇게 로프로 혹은 안전 장비로 제단된 등산로만 오르고 오르다 보면.....


정상 표지석정상 표지석입니다.

이 표지석을 만나게 됩니다.

정상.정상.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 듯 오르고 오르다보니 아무리 험산이고 제 체력이 바닥이라도 산은 어느샌가 정상을 허락합니다. 사람의 의지인지 산이 허락한 것인지 헷갈리지만 저는 허락한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백두산 천지를 봤던 기억이 있기에, 산이 허락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정상에 도착하면 사진 찍고 물 마시고 먹거리 먹고 잠시 쉬다가 내려오곤 합니다. 아직 많은 산을 타본 것은 아니지만, 거의 같은 패턴입니다. 참 뻔하고 재미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래도 오르게 됩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산입니다. 백수시절 저질 체력으로 다리가 풀려 정상을 밟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금연과 약간의 운동으로 체력을 다진 뒤 여러가지 장비의 힘을 빌려 겨우 올랐습니다. 산도 이번에 저의 노력에 감동을 했는지 다치지 않고 정상을 밟게끔 허락해 주었고요. 


정상에서정상에서 독사진입니다. 언제나 인증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헬기장 가기전인가에 찍은 동영상 하나 올리고 마치겠습니다. 산세가 아름다운 산입니다. 저 능선을 따라 또 걷다보면 또 걷다보면 무엇이 나올까 혹은 저 계곡 계곡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쫒아가보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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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팔면봉을 보면서

소소한 하루 | 2014. 11. 13. 01:05
Posted by 비파형동검


조선일보 팔면봉조선일보 11월10일 1면에 게재된 팔면봉입니다.


팔면봉은 한마디로 그날의 이슈를 정리해주는 촌철살인과 같은 기사입니다. 마치 전문가가 나서서 이슈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 모양새인데요. 간혹 읽다보면 이해하지 못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저분들과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박대통령 APEC. 넘어가겟습니다. 두 번째도 특별히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조선일보니까요.


하지만 세 번째를 보고 '솔직히 해도 너무하네' 라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날 국제면의 탑 이슈였습니다. 멕시코의 한 마을 경찰서장이 마약조직에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한 이후의 고생은 이미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살해 위협정도는 애교인 멕시코 마피아인데요, 그 사람들이 대학생 43명을 죽였으니 멕시코에서는 어찌 느낄지 모르겠지만 참사 수준입니다. 저도 그 기사를 읽고서 참 멕시코 대단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멕시코 실종 대학생 43명, 갱단 조직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돼.. 이유는?


이 기사를 읽어보고 참고하세요.

하여튼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난 멕시코를 조선일보가 준엄하게 비웃습니다. 희망까지 운운하면서 말이죠.

10일 이 기사가 나가고 11일 참사 209일 만에 세월호 수색을 중단합니다. 아직 실종자 9명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는 학생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의 학생들이 있는데도 말이죠. 그 학생들뿐만 아니라 30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세월호를 이념 논쟁으로 몰고 가고, 마치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양 말했던 언론이 조선일보 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고등학생들이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구조해야할 사람들이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햇습니다. 팩트 좋아하는 사람들이 운운하는 팩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이 사고를 이념논쟁으로 몰고가 진실을 가려야할 특별법 제정을 사법질서를 흔드는 폭동으로 표현한 것이 조선일보입니다. 저의 사상을 떠나서 조선일보를 보다보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희망이라니요.


만약에 멕시코에서 우리나라 세월호 사건을 보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해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고 비웃지는 않았을까요? 솔직히 우리나라 정론지라고 말하고 있는 조선일보가 부끄러워집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다른 나라를 비웃지 못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사고 후 수습입니다. 그리고 구조이고요.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서 본 우리나라는 안전에 대한 의식도 빈약했으며,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대통령께서는 사진찍는데만 골몰하셨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했고요. 이런 나라에서 멕시코의 희망이라니요. 대한민국의 희망마저도 바다에 수장시켜버리는 데 멕시코의 희망을 운운하는 것이 저는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오랫동안 보신 분들은 분명히 멕시코도 어쩔 수 없는 나라군 하면서 혀를 찰 것입니다. 그리고 멕시코 여행갈 때 조심해야지 정도 생각하시겠지요. 가족이나 친척이 있다면 안부정도 물었을 것이고요. 그래도 좋습니다. 네 그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하나의 의무가 생겼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위를 정확하고 사실 그대로 밝혀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의 아이들이 여행을 떠나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번 세월호 특별법입니다. 이 세월호 특별법을 통해서 (사실 그대로 밝혀질 일은 없지만) 사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도대체 사고 시간 무슨일이 있었던 것이며, 왜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를 말이죠.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희망을 말할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개인적인 사상이나 이념을 떠나서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세월호에 대해서 제대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사들을 다시 찾아보며 읽고 있습니다. 관련 서적도 읽고 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제대로 볼 수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세월호를 제대로 처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 뉴스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그 세월호를 보며 관심을 더 가지기로 했습니다. 저의 관심이 큰 변화를 일으키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진실을 원하는 유가족 분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사 하나하나 제대로 읽어볼 요량입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할 용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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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ㅁ 2014.11.13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43회 한국편집기자협회 배구대회 우승

소소한 하루 | 2014. 11. 3. 01:18
Posted by 비파형동검

11월 1일

제43회 한국편집기자협회 배구대회에서 제가 다니는 신문사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첫 경기는 제주일보였는데 제주일보가 불참하는 바람에 부전승으로 2차전으로 올라가게되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밝히겠지만 이 부전승이 저희 신문사 우승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아마추어 경기이고 거의 술로 목을 축이는 그런날에 한경기를 쉬고 올라간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앞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합니다. 하여튼 2차전은 국민일보와 3차전은 전북연합, 4차전은 준결승전으로 중앙일보와 경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승전에서는 서울신문과 대결을 펼쳤는데요, 역전과 재역전의 접전 속에 마지막 23 대 23에서 우리팀의 공격 성공과 상대팀의 실책으로 25 대 23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팀들 모두 열심히 했는데, 첫 경기에서는 그냥 어영부영 있다가 승리했고, 사실 저는 별다른 활약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공격도 스파이크 몇개?? 하여튼 운이 좋게 파죽지세로 올라가게 되었고, 아마추어다 보니 수비만 잘하고 스파이크 칠 수 있는 사람만 있으면 왠만하면 1~2승은 거둡니다. 거기다가 서브!!! 이게 중요한데요. 체력을 세이브 시키면서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서브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준결승부터 저의 서브가 터지고 보통 3점이상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백진용 부장님의 서브가 기가 막히게 잘 들어가면서 우리팀은 결승까지 가게 됩니다.


결승전에서는 몇가지 기억나는 부분이...일단 저의 활약을 중심으로 하자면!!!

초반에 중요한 실책도 있었지만, 블로킹을 해 냅니다. 보통 주공격이 레프트를 맞는데 제가 라이트에서 그 공격을 막아내니까 스파이크 다운 스파이크가 없었습니다. 전체 경기 중 3개 정도가 기억 나는군요. 그 중 2개를 제가 막았습니다. 상대방 공격수를 막으니 그 다음은 그냥 넘어가고 넘어오는 수준에, 저희는 공격을 했고요.

두 번째는...저의 공격도 공격이었지만, 이상목 선배의 실책과 함께 공격이 잘 먹혔습니다. 거의 무방 비더군요. 그래서 몇개가 들어갔고, 중요한 순간에 점수를 딸 수 있었습니다.


 1세트 25점이라 생각보다 길기도 했습니다. 초반에 뭔가 이상하게 욕심이 생겼는지 뒤지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8점차까지 밀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팀이 차근차근 점수를 땃고, 상대팀이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점수차가 벌어지자 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질거라는 생각보다는 붙어보자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터닝포인트에서 우리팀이 조금 더 침착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응원!! 선수로 뛰지는 못했지만(특히 이하늘기자는 여자임에도 상당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히도 응원하더군요. 그래서 우리팀이 무너질 때 다시 추스릴 힘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팀도 엄청난 실책을 하고 상대팀도 실수가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경기를 부전승으로 올라가 체력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기에 승리할 수 있었고요. 결승전에서는 왼쪽 무릎이 아파오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같은 덩어리들이 점프를 뛰는 경기를 하는 것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그날은 의외로 견딜만 해 괜찮겠다 싶었는데 일요일에 걷기도 힘들 정도로 욱신거리더군요. 그래도 파스 바르고 있으니 시원해지고 자꾸 걷다보니 풀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아픈 것도 나중에 잊혀지기도 하더군요.


첫 번째 참가 대회에서는 공동 3위를 차지했고, 두 번째에서는 2차전인가에서 탈락 세 번째도 아마 비슷할 겁니다. 그러다가 네 번째 참가 대회에서 터지게 되었는데요, 별다른 활약도 없었던 제게 선배들이 최우수선수상을 몰아줘 제가 상을 받게되었습니다. 기사에는 매경기 송곳 스파이크를 날렸다고 거짓말을 한 선배들 때문에 저는 일약 기자치고는 훌륭한 배구 실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경기 스파이크 중 하나라도 제대로 들어가면 다행이었습니다. ㅎㅎㅎ 하지만 공식적으로 저는 송곳 스파이크를 꽂아버린 기자이고요.ㅎㅎㅎㅎㅎ


하여튼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힘도 들었고, 전날 숙직으로 잠도 못자고 갔지만 좋은 결과를 얻게 돼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MVP까지 수상했으니 더 기쁩니다.

참 족구대회도 있는데 족구는 공동 3위했습니다. 저는 배구로 선택과 집중을 했기에 족구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군대에서 족구도 잘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우리 신문우리 신문 15면에 나왔습니다.



우승배구대회 우승 후 기념사진.


헹가래안감독님(안상영 부장님) 헹가래


헹가래 2김현철 국장님 헹가래


헹가래조남원 국장님 헹가래...하지만 실패!!!


수상사진MVP 수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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